다드림 청년 공동체 Q.T
259일차 완료(거룩을 위한 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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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5-09-16 06:38본문
매일드림 259일차 완료(거룩을 위한 절교)
...‘절교’(히브리어 נבדל, 니브달: 구별되다)는 배타가 아니라 소속의 재정의다. 나는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세상의 칭찬과 편리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로 자신을 다시 규정하는 일이다.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느 9:2)
1. 거룩을 위한 분리
백성들은 먼저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했다. ‘절교’(히브리어 נבדל, 니브달: 구별되다)는 배타가 아니라 소속의 재정의다. 나는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세상의 칭찬과 편리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로 자신을 다시 규정하는 일이다. 구별은 ‘안 하는 것’의 목록을 늘리는 금욕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기 위해 불필요한 끈을 끊는 헌신의 형태다(레 20:26).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레 20:26)
분리는 또한 방향의 문제다. 세상 속에 있으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요 17:15–16).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다른 리듬과 다른 기준으로 살아가는 결단이다. 그래서 거룩은 언제나 시간·관계·욕망에서 드러난다. 주님의 날을 시간으로 구별하고, 신앙을 흐리는 결탁의 관계를 정리하며, 그저 욕망이었던 만족의 원천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이다.
2.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용기
그들은 절교하고 “서서” 하나님 앞에 섰다. 아담은 죄 후에 숨었지만, 이들은 숨지 않고 섰다. 회개는 감정의 격랑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는 위치의 회복이다. ‘선다’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말씀의 빛 아래 자신을 드러내는 태도이며, 변명 대신 고백의 언어를 택하는 용기다.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약 1:23)
또한 ‘선다’는 꾸준함을 뜻한다. 잠시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자리를 펴는 습관이다(정한 시간, 정한 자리, 정한 말씀 앞에 멈춰 서는 리듬). 이 꾸준함이 마음의 방향을 지킨다. 느헤미야의 세움도 결국 무릎과 발의 꾸준함에서 나왔다.
3. 죄를 인정하는 공동체
이스라엘은 자기 죄뿐 아니라 조상들의 허물까지 자복했다. 이것은 과거 탓이 아니라 세대를 관통하는 왜곡의 고리를 우리 죄로 연결 지어 인정하는 성숙이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경건만 챙기지 않고, 우리의 실패, 즉 형식주의와 분열, 약자과 외면, 돈과 성과 중심의 문화 등을 이름 불러가며 고백하는 일이다. 개인의 회개는 은혜의 문을 열고, 공동체의 회개는 부흥의 길을 연다.
느헤미야 10장은 이 회개가 구체적 언약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말씀 순종·혼합결혼 중단·안식일과 헌금의 회복 등). 고백이 언약으로, 언약이 다시 습관으로 이어질 때 회복은 거룩한 구조가 된다.
“주님, 이방의 가치와 죄의 습관을 끊어내고 오직 주 앞에 바로 서게 하옵소서. 저의 죄뿐 아니라 공동체의 허물까지 안고 회개하며, 주님의 뜻안에서 새 역사를 여는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