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드림 청년 공동체 Q.T
260일차 완료(틈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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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5-09-17 06:34본문
260일차 완료(조영찬 목사)
"틈싸움"
...비우기만 하면 ‘도비야’가 이름만 바꿔 다시 들어온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과 반대되는 것들이 빈 공간을 가만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생겨나는 틈을 하나님의 임재로 채워 메워야 한다. 나는 이 싸움을 ‘틈싸움’이라 부르기로 했다.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명령하여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전의 그릇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놓았느니라.”(느 13:8–9)
느헤미야는 성전 방의 오용(도비야 사건), 레위인의 생계 붕괴, 안식일 장터, 혼합결혼 등 거룩을 흐리는 섞임을 하나하나 제거했다. 그중 오늘은 성전 방 오용 사건에 초점을 맞춰 묵상을 해보았다. 느헤미야의 성벽재건 이후에도, 어느 순간 하나님의 전 뜰 방에 도비야의 세간이 은밀히 다시 들어왔다. 신약은 이런 현상을 영적 전쟁의 차원에서 설명한다.
“더러운 귀신이...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 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마 12:43~45)
결국 느헤미야가 행한 ‘정결’은 단순한 도덕 개선이 아니라 예배 중심으로의 재배치였다. 무엇을 치웠는가보다 누구를 모셨는가가 본질이다. 우리의 정결도 “하지 말라”의 목록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다시 자리를 내어 드리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
성벽 밖에서 공격하던 도비야가 결국 성전 안까지 파고든 것처럼, 우리의 영적 싸움도 단순한 금욕정도가 아니라 ‘임재의 재배치’가 필요하다. 곧 시간의 중심을 예배로, 관계의 중심을 사랑으로, 욕망의 중심을 하나님 나라로 돌려놓는 결단이다. 이 결단이 혼탁한 세대 속에서 우리의 영을 거룩히 지켜 준다.
오늘 말씀에 녹아있는 그리스도인의 정결은 ‘분리’와 ‘헌신’이라는 두 박자로 완성된다. 잘못 붙은 끈을 끊는 것이 절반이라면, 비워진 공간을 하나님의 임재로 채우는 것이 나머지 절반이다. 비우기만 하고 채우지 않으면 ‘도비야’는 언제든 형태만 바꿔서 다시 들어온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생기는 작은 틈까지도 임재로 메우는 싸움, 곧 ‘틈싸움’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정결은 이처럼 중심의 은밀한 혼합을 드러낸다. 신앙과 능률주의, 경건과 비교심, 섬김과 인정욕이 뒤섞이면 겉은 반듯해 보여도 속은 무너지게 되어있으니... 부디 나의 중심이 이것저것 창고처럼 쌓아두는 공간이 아니라, 성소로 바쳐진 중심을 찾으시는 주님께 온전함을 올려 드릴 수 있는 정결한 마음이 되기를 말씀 앞에서 소망하는 아침이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아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주님, 제 마음의 성소를 비추사 숨어든 ‘도비야’를 분별하게 하소서.
버려야 할 세간을 과감히 던져내고, 십자가의 피로 정결케 하시며, 말씀과 성령의 임재로 다시 채우게 하옵소서.
시간의 중심을 예배로, 관계의 중심을 사랑으로, 욕망의 중심을 하나님 나라로 재배치하게 하시고,
안식의 문, 말씀의 문, 눈과 입술의 문에 문지기를 세워 매일의 틈을 지키게 하옵소서.
효율과 인정욕의 은밀한 혼합을 끊고, 반열과 질서를 바로 세워 은혜가 흐르게 하시며,
사람 의존이 아닌 복음의 원리 위에 서는 공동체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성령의 임재로 모든 틈을 메우사 우리로 참된 성전답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