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드림 청년 공동체 Q.T
201일차 완료(이미 뒤집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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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5-07-21 06:38본문
매일드림 201일차 완료(조영찬 목사)
"이미 뒤집으셨다."
하나님 없이 지은 안전지대는
오히려 영적 무감각을 초래한다.
우리는 하루하루 순간순간 착실하게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가만히 보아하니
하나님은 결코 아무나 무너뜨리지 않으신다.
가끔, 무너짐 이후 하나님과의 참 동행을 회복해가는 이들을 보는데,
나는 이런 무너짐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 부르기로 했다.
“네 재물을 빼앗을 것이며 네가 무역한 것을 노략할 것이며 네 성을 헐 것이며 네가 기뻐하는 집을 무너뜨릴 것이며 또 네 돌들과 네 재목과 네 흙을 다 물 가운데에 던질 것이라”(겔 26:12)
1. “네 재물과 상품을 빼앗을 것이며”
하나님은 두로가 쌓은 성을 건드리신다.
두로는 무역과 상업으로 번성하던 도시였다.
그러나 그 번영은 자기 자신을 향한 교만과 자만으로 이어졌다.
하나님은 종종 자기가 택한 이들에 대하여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긴 영역’을
철저하게 건드리신다.
무너짐은 징벌 이전에 깨어남의 마지막 기회다.
내 삶의 중심이 하나님 외에 세워졌다면,
그 무너짐은 은혜다.
2. “네 성을 헐고, 네 기뻐하는 집을 무너뜨릴 것이며”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한 안전지대를 드러내신다.
‘성’은 보호, ‘집’은 안식과 자랑의 상징이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지은 안전지대는
오히려 영적 무감각을 초래한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다.
하나님은 잠든 영혼을 흔들기 위해
우리가 너무 사랑한 구조물들을 무너뜨리신다.
하나님은 파괴자가 아니라,
새롭게 세우시는 회복자이시다.
3. “네 돌들과 네 재목과 네 흙을 다 물 가운데에 던질 것이라”
이 표현은 철저한 해체를 상징한다.
모든 건축 자재가 바다에 던져진다는 건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무너짐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무너진 자리 위에만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무너질 때,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 서게 된다.
“내가 너를 패망하게 하여 다시 있지 못하게 하리니 사람이 비록 너를 찾으나 다시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리라 주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26:21)
이 말씀을 끝으로
두로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는 끝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안 나올까?
모든 이의 죄를 대속하신 구속자 예수가 있다.
그리고 그 메시아는 결국 두로까지도 가셔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딸에게 들린 귀신도 쫓아내주신다(막 7:24-30).
무엇을 암시하는 구절일까?
왜 구체적으로 ‘두로’ 지방으로 가셨다고 성경에 쓰였을까?
구약에서 ‘영원히 만나지 못하리라’라는 심판의 말씀마저도
사랑으로 뒤집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라는 것이다.
이 사랑을 언제 깨닫느냐가 과연 인생의 관건이리라.
주님,
저는 때때로 두로처럼
제가 가진 것을 너무 신뢰하며 살아왔습니다.
재물과 안정, 인간관계와 업적들...
모두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무너짐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작임을 믿습니다.
이제는 헐린 자리 위에 주의 나라가 세워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미 뒤집으셨다."
하나님 없이 지은 안전지대는
오히려 영적 무감각을 초래한다.
우리는 하루하루 순간순간 착실하게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가만히 보아하니
하나님은 결코 아무나 무너뜨리지 않으신다.
가끔, 무너짐 이후 하나님과의 참 동행을 회복해가는 이들을 보는데,
나는 이런 무너짐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 부르기로 했다.
“네 재물을 빼앗을 것이며 네가 무역한 것을 노략할 것이며 네 성을 헐 것이며 네가 기뻐하는 집을 무너뜨릴 것이며 또 네 돌들과 네 재목과 네 흙을 다 물 가운데에 던질 것이라”(겔 26:12)
1. “네 재물과 상품을 빼앗을 것이며”
하나님은 두로가 쌓은 성을 건드리신다.
두로는 무역과 상업으로 번성하던 도시였다.
그러나 그 번영은 자기 자신을 향한 교만과 자만으로 이어졌다.
하나님은 종종 자기가 택한 이들에 대하여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긴 영역’을
철저하게 건드리신다.
무너짐은 징벌 이전에 깨어남의 마지막 기회다.
내 삶의 중심이 하나님 외에 세워졌다면,
그 무너짐은 은혜다.
2. “네 성을 헐고, 네 기뻐하는 집을 무너뜨릴 것이며”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한 안전지대를 드러내신다.
‘성’은 보호, ‘집’은 안식과 자랑의 상징이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지은 안전지대는
오히려 영적 무감각을 초래한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다.
하나님은 잠든 영혼을 흔들기 위해
우리가 너무 사랑한 구조물들을 무너뜨리신다.
하나님은 파괴자가 아니라,
새롭게 세우시는 회복자이시다.
3. “네 돌들과 네 재목과 네 흙을 다 물 가운데에 던질 것이라”
이 표현은 철저한 해체를 상징한다.
모든 건축 자재가 바다에 던져진다는 건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무너짐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무너진 자리 위에만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무너질 때,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 서게 된다.
“내가 너를 패망하게 하여 다시 있지 못하게 하리니 사람이 비록 너를 찾으나 다시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리라 주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26:21)
이 말씀을 끝으로
두로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는 끝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안 나올까?
모든 이의 죄를 대속하신 구속자 예수가 있다.
그리고 그 메시아는 결국 두로까지도 가셔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딸에게 들린 귀신도 쫓아내주신다(막 7:24-30).
무엇을 암시하는 구절일까?
왜 구체적으로 ‘두로’ 지방으로 가셨다고 성경에 쓰였을까?
구약에서 ‘영원히 만나지 못하리라’라는 심판의 말씀마저도
사랑으로 뒤집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라는 것이다.
이 사랑을 언제 깨닫느냐가 과연 인생의 관건이리라.
주님,
저는 때때로 두로처럼
제가 가진 것을 너무 신뢰하며 살아왔습니다.
재물과 안정, 인간관계와 업적들...
모두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무너짐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작임을 믿습니다.
이제는 헐린 자리 위에 주의 나라가 세워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