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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일차 완료(성막 문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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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5-08-02 11:56본문
매일드림 214일차 완료(조영찬 목사)
"성막 문지기"
날마다 일용할 말씀을 먹지 않으면
도무지 우리 힘과 의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자리.
다양한 공격이 오면 오는 대로 뻥뻥 뚫릴 것인가?
굳건히 지켜낼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므셀레먀의 아들 스가랴는 회막 문지기가 되었더라 택함을 입어 문지기 된 자가 모두 이백열 두명 이니 이는 그들의 마을에서 그들의 계보대로 계수된 자요 다윗과 선견자 사무엘이 전에 세워서 이 직분을 맡긴 자라 그들과 그들의 자손이 그 순차를 쫓아 여호와의 성전 곧 성막 문을 지켰는데”(대상 9:21-23)
1. “택함을 입어 문지기 된 자가”
모든 직분은 하나님이 세우신 자리이다.
문지기는 그눈에 띄지 않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성막을 지키는 거룩한 부르심의 사명을 지녔다.
여기서 ‘택함을 입은’ נִבְחָרִים(나브하림)은
‘선택하다, 뽑다’라는 의미로
하나님이 친히 지정하신 선택된 자들을 뜻한다.
내가 있는 자리,
크든 작든 하나님이 친히 주신 사명의 자리다.
2. “그들과 그들의 자손이 그 순차를 쫓아 여호와의 성전 곧 성막 문을 지켰는데”
사명은 계승되고, 기억된다.
이 말씀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성막 문지기의 역할이
이전 세대부터 이어져 온 신실한 사명임을 강조한다.
이름은 자주 바뀌지만, 사명은 고스란히 이어진다.
지금 내가 하는 헌신은, 다음 세대를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오늘의 충성은 내일의 기초가 되며,
신실한 사명은 역사가 기억한다.
남도의 이런저런 직분들이 우리 자녀들의 이름으로
잘 이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3. “여호와의 성전 곧 성막 문을 지켰는데”
하나님의 임재를 여는 경계선,
문지기는 단순히 문을 지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백성 사이의 거룩한 경계를 지킨 사람들이다.
곧 예배의 거룩함을 보존하는 영적 파수꾼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파수꾼에게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겔 33:6)
이 자리를 우습게 여기면,
예배가 무너지고 공동체의 거룩이 흐트러진다.
예배의 문턱을 지키는 사람,
그는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날마다 일용할 말씀을 먹지 않으면
도무지 우리 힘과 의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자리.
다양한 공격이 오면 오는 대로 뻥뻥 뚫릴 것인가?
굳건히 지켜낼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마른 뼈(겔 37)조차도 살리시는 성령의 역사를
우리가 가벼이 판단하지 말자.
결국은 먹느냐 마느냐 그 싸움이리라.
주님,
이름도 빛나지 않고
박수도 없는 자리에 서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인 줄 알고
오늘도 묵묵히 서겠습니다.
우리가 지키는 이 문이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문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금지어 표기로 인해 쫓으로 표기함.
"성막 문지기"
날마다 일용할 말씀을 먹지 않으면
도무지 우리 힘과 의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자리.
다양한 공격이 오면 오는 대로 뻥뻥 뚫릴 것인가?
굳건히 지켜낼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므셀레먀의 아들 스가랴는 회막 문지기가 되었더라 택함을 입어 문지기 된 자가 모두 이백열 두명 이니 이는 그들의 마을에서 그들의 계보대로 계수된 자요 다윗과 선견자 사무엘이 전에 세워서 이 직분을 맡긴 자라 그들과 그들의 자손이 그 순차를 쫓아 여호와의 성전 곧 성막 문을 지켰는데”(대상 9:21-23)
1. “택함을 입어 문지기 된 자가”
모든 직분은 하나님이 세우신 자리이다.
문지기는 그눈에 띄지 않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성막을 지키는 거룩한 부르심의 사명을 지녔다.
여기서 ‘택함을 입은’ נִבְחָרִים(나브하림)은
‘선택하다, 뽑다’라는 의미로
하나님이 친히 지정하신 선택된 자들을 뜻한다.
내가 있는 자리,
크든 작든 하나님이 친히 주신 사명의 자리다.
2. “그들과 그들의 자손이 그 순차를 쫓아 여호와의 성전 곧 성막 문을 지켰는데”
사명은 계승되고, 기억된다.
이 말씀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성막 문지기의 역할이
이전 세대부터 이어져 온 신실한 사명임을 강조한다.
이름은 자주 바뀌지만, 사명은 고스란히 이어진다.
지금 내가 하는 헌신은, 다음 세대를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오늘의 충성은 내일의 기초가 되며,
신실한 사명은 역사가 기억한다.
남도의 이런저런 직분들이 우리 자녀들의 이름으로
잘 이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3. “여호와의 성전 곧 성막 문을 지켰는데”
하나님의 임재를 여는 경계선,
문지기는 단순히 문을 지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백성 사이의 거룩한 경계를 지킨 사람들이다.
곧 예배의 거룩함을 보존하는 영적 파수꾼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파수꾼에게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겔 33:6)
이 자리를 우습게 여기면,
예배가 무너지고 공동체의 거룩이 흐트러진다.
예배의 문턱을 지키는 사람,
그는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날마다 일용할 말씀을 먹지 않으면
도무지 우리 힘과 의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자리.
다양한 공격이 오면 오는 대로 뻥뻥 뚫릴 것인가?
굳건히 지켜낼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마른 뼈(겔 37)조차도 살리시는 성령의 역사를
우리가 가벼이 판단하지 말자.
결국은 먹느냐 마느냐 그 싸움이리라.
주님,
이름도 빛나지 않고
박수도 없는 자리에 서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인 줄 알고
오늘도 묵묵히 서겠습니다.
우리가 지키는 이 문이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문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금지어 표기로 인해 쫓으로 표기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