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드림 청년 공동체 Q.T
91일차 완료(다윗의 역할을 넘어설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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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5-04-01 06:24본문
91일차 완료(조영찬 목사)
부제: 예수가 걸어가신 호구의 길(삼상 22:11~23)
'우리는 서로에게 모세가, 아론이, 훌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매일 그대가 모세일 순 없습니다. 모두가 각자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때에 따라 서로를 적극적으로 세워줘야 합니다.'
언젠가 청년 임원들이 모였을 때 함께 나누었던 대화였다.
관찰
다윗을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사울은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이 도망치는 다윗을 도왔다는 도엑의 말을 듣고 아히멜렉 제사장과 놉의 다른 제사장들을 기브아로 불러 모았다. 사울이 아히멜렉을 다윗과 공모해 자신을 대적한 자로 몰아가자, 아히멜렉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도움을 청할 때 아히멜렉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가는 중인 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가 다윗과 공모해 사울을 대적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사울은 여전히 아히멜렉을 다윗의 공모자로 여기고 그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사울은 아히멜렉뿐만 아니라 놉의 모든 제사장과 사람들과 짐승들까지 죽이라고 명령해서 놉을 진멸한다. 한순간에 85명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다윗이라는 하나님의 사람 한 명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르는가? 다드림 청년 공동체를 세워가던 초기에, 리더 친구와 함께 합을 맞춘 모토가 있고, 여전히 청년들에게 당부하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을 위한 공동체는 없다.'
한 명을 위해 모두가 희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그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방법을 찾으며, 조율을 통해 아름다운 모습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사역을 하다보면, 결국 사역은 기다림과 믿어줌이 답이라는 귀결이다. 청소년들은 끊임없이 속이고 올라타고, 심지어 어렵게 시간을 내어 음식을 챙겨가도 바람 맞힌다. 예컨데, 배달 사역을 가면, 청소년들은 갑작스럽게 물 먹이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냥 원래 그런 시기이다. 그래도 속아주고 믿어주는 것이다. (이런 청소년들이 계속해서 사랑을 먹고 후에 어떻게 자랐을 것 같은가?)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자문하라. 사실 답은 간단하다. 어떤 사랑을 깨닫는다면 말이다. 하나님이 오늘도 그대를 믿어주고 계시지 않은가? 오늘날까지 '에벤에셀'로 믿어주시기 않았는가? 앞으로도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지 않으시겠는가? 앞으로도 '여호와이레'로 준비해주시기 않으시겠는가?
묵상과 적용, 결단
어쩌면 이게 십자가의 도의 비밀이다. 서로가 자신이야말로 다윗이라고 주장하는 시대상 속에서, 과연 그대는 묵묵히 아히멜렉이 되어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이 아침, 자문해본다. 어쩌면, 아히멜렉의 길을 택했을 때 이내 닥쳐올 결과까지도 다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세상은 그 길을 호구라 부른다. 이타를 잃고 이기만 남은 요즘 세상은 더 더욱 말이다.
놀랍게도 예수가 그 호구의 길을 당당히 걸으셨다. 제자 공동체가 성령을 받기까지, 제자들이 비록 몸은 자랐으나 영적으로 아이인지라, 자신을 부인하고 떠나갈 것을 알고 있음에도 끝까지 믿어주신 그 넉넉한 사랑에 의해, 십자가와 부활 이후 약속대로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오순절 이후 어떤 걸음을 걸었는가?
호구의 길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묵묵히 걸어가신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다드림 러너스와 영육다짐으로 나날이 넉넉해지는 다드림 청년 공동체의 체력이 서로를 넓게 품는 그릇으로 사랑의 그릇으로까지도 이어질 수 있을까? 예수님은 어쩌면 그 걸음을 가장 기뻐하지 않으실까? 우리 공동체의 로고답게 말이다. (큰 자든 작은 자든 주님 안에선 다 같은 자이며, 하나)
우리는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반사체의 정체성'으로서 이 아침 잠잠히 성령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