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드림 청년 공동체 Q.T
199일차 완료(아무리 폭우가 쏟아져도 참사랑은 사랑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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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5-07-18 06:36본문
199일차 완료(아무리 폭우가 쏟아져도 참사랑은 사랑이더라)
성인이 되면, 껍데기뿐인 약속과 그에 더해 쏟아지는 공수표들에는
그다지 마음을 두지 않는 법을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
그래야만 서로가 마음을 지킬 수 있으니까.
잠언에 의하면 마음을 지키는 것은 곧 생명과도 직결된다.
안쓰럽게도 기술의 발달로 인해 아이들마저도
최소한의 필터조차 없이
자조 섞인 정보들을 무분별하게 습득하다 보니
그 시기는 예년보다 확실히 앞당겨져 있다.
서로를 물고 뜯으며,
속고 속이고, 이내 밟고 올라가며 자신이 살아 남아야 하는 세상에서
‘한국의 청소년’들 중 대다수는 건물주와 눈에 보이는 어떠한 것.
그와 비슷한 것들에 삶이 포커싱 되어 있는 현실이다.
인생에서 상호 간 신뢰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건만,
더 이상 사람은 사람을 쉽게 신용하지 않는다.
이는 자기 자신조차 도저히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렸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꼭 그렇다.
마냥 순수하기만 했던 시절을 지나면서
책임지고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저 탐욕에 눈이 멀었기 때문인가,
인생들은 어느새 하나님과 했던 약속들이
대부분 사라져 버린 자신을 말씀 앞에서 어느 날 문득 마주치곤 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사람은 늘 잊지만, 하나님이 기억하신다.
그렇기에 이 땅은 오늘도 소망이 있다.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겔 16:60)
1. “그러나 내가... 기억하고”
에스겔 16장은 처절한 장이다.
이스라엘은 크게 배신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가장 어렸을 때,
즉 처음 은혜로 불러내셨던 때를 기억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어 ‘기억하다’ 자카르(זָכַר)는
단순히 떠올린다는 뜻만 담고 있지 않다.
다시 그 관계를 책임지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충성보다,
자신의 약속을 더 신실히 기억하시는 분이다.
2.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회복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서 시작된다.
에스겔 16장은 인간의 가장 철저한 배신을 그리지만,
“그러나”로 시작하는 60절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님은
"너와 세운 언약"을 다시 언급하신다.
이 언약은 우리가 지켜낸 것이 아닌,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지켜오신 약속이다.
우리가 어그러졌을 때도,
언약은 여전히 우리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었다.
3.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새로운 시작은 은혜 위에서 다시 열린다.
‘영원한 언약’은 히브리어로 בְּרִית עוֹלָם(브리트 올람)
시공을 넘는, 끝나지 않는 하나님의 의지다.
하나님은 이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시 관계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포기하지 않으며,
한 번도 중단된 적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말씀에 근거하여 확신한다.
회복의 시작은
우리가 돌아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돌아보셨기 때문이다.
자, 다시 아침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하여 오늘도 힘을 내보자.
부족한 이들을 들어 귀히 쓰시는 그 길로,
사랑이란 이름의 ‘십자가의 도’를 감히 한 걸음이나마 걸어가보자.
주님,
제가 하나님을 잊어도
주님은 당신의 약속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배신에도 불구하고
다시 언약을 기억하시는 그 은혜 앞에
겸손히 무릎 꿇습니다.
이 사랑이 제 삶을 다시 일으키는
유일한 회복의 길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오늘도 그 은혜 안에 머물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인이 되면, 껍데기뿐인 약속과 그에 더해 쏟아지는 공수표들에는
그다지 마음을 두지 않는 법을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
그래야만 서로가 마음을 지킬 수 있으니까.
잠언에 의하면 마음을 지키는 것은 곧 생명과도 직결된다.
안쓰럽게도 기술의 발달로 인해 아이들마저도
최소한의 필터조차 없이
자조 섞인 정보들을 무분별하게 습득하다 보니
그 시기는 예년보다 확실히 앞당겨져 있다.
서로를 물고 뜯으며,
속고 속이고, 이내 밟고 올라가며 자신이 살아 남아야 하는 세상에서
‘한국의 청소년’들 중 대다수는 건물주와 눈에 보이는 어떠한 것.
그와 비슷한 것들에 삶이 포커싱 되어 있는 현실이다.
인생에서 상호 간 신뢰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건만,
더 이상 사람은 사람을 쉽게 신용하지 않는다.
이는 자기 자신조차 도저히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렸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꼭 그렇다.
마냥 순수하기만 했던 시절을 지나면서
책임지고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저 탐욕에 눈이 멀었기 때문인가,
인생들은 어느새 하나님과 했던 약속들이
대부분 사라져 버린 자신을 말씀 앞에서 어느 날 문득 마주치곤 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사람은 늘 잊지만, 하나님이 기억하신다.
그렇기에 이 땅은 오늘도 소망이 있다.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겔 16:60)
1. “그러나 내가... 기억하고”
에스겔 16장은 처절한 장이다.
이스라엘은 크게 배신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가장 어렸을 때,
즉 처음 은혜로 불러내셨던 때를 기억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어 ‘기억하다’ 자카르(זָכַר)는
단순히 떠올린다는 뜻만 담고 있지 않다.
다시 그 관계를 책임지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충성보다,
자신의 약속을 더 신실히 기억하시는 분이다.
2.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회복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서 시작된다.
에스겔 16장은 인간의 가장 철저한 배신을 그리지만,
“그러나”로 시작하는 60절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님은
"너와 세운 언약"을 다시 언급하신다.
이 언약은 우리가 지켜낸 것이 아닌,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지켜오신 약속이다.
우리가 어그러졌을 때도,
언약은 여전히 우리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었다.
3.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새로운 시작은 은혜 위에서 다시 열린다.
‘영원한 언약’은 히브리어로 בְּרִית עוֹלָם(브리트 올람)
시공을 넘는, 끝나지 않는 하나님의 의지다.
하나님은 이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시 관계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포기하지 않으며,
한 번도 중단된 적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말씀에 근거하여 확신한다.
회복의 시작은
우리가 돌아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돌아보셨기 때문이다.
자, 다시 아침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하여 오늘도 힘을 내보자.
부족한 이들을 들어 귀히 쓰시는 그 길로,
사랑이란 이름의 ‘십자가의 도’를 감히 한 걸음이나마 걸어가보자.
주님,
제가 하나님을 잊어도
주님은 당신의 약속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배신에도 불구하고
다시 언약을 기억하시는 그 은혜 앞에
겸손히 무릎 꿇습니다.
이 사랑이 제 삶을 다시 일으키는
유일한 회복의 길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오늘도 그 은혜 안에 머물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