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드림 청년 공동체 Q.T
156일차 완료(다시, 하나님의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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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5-06-05 06:22본문
매일드림 156일차 완료(다시, 하나님의 초대장)
부제: “히스기야의 믿음, 그 이상의 영역으로”(사 36-39)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사 38:17)
관찰 및 묵상
1.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히스기야는 죽을 병을 선고받고 눈물로 기도하던 사람이다.
그 고통은 절망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통로였다는 것을 그는 고백한다.
우리도 그렇다.
지금 이 고통이 끝나야 평안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는 그 자리에서
비로소 참된 평안이 시작된다.
2.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히스기야는 자신이 육신적으로 살아난 것보다,
영혼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생명을 넘어 영혼까지도 건지시는 사랑이다.
사람은 몸이 낫는 것에 감격하지만,
믿음은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더 크게 여긴다.
3. “나의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마주하지 않으시고,
자기 등 뒤로 던지셨다.
기억하지 않으시고, 다시 묻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실 때,
과거의 실패가 아니라,
회복된 나의 오늘을 보신다.
이 은혜 앞에 우리는 다시 살아나게 된다.
적용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
사실 우리야말로 오늘날의 히스기야가 아닌가?
다만, 오늘 주로 묵상한 본문에서 다루지는 않았으나
히스기야의 다음 세대를 향한 마음은 다소 아쉽다.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하고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사 39:8)
본인은 큰 은혜를 입었으나 더 확장되지 못하고 좋소이다 로 끝이 나는 히스기야.
한계 많은 인간의 삶을 누가 부정하랴.
도리어 이게 맞다고 주장하는 세상의 메시지에 그 누구도 쉽게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의 결단이다.
그저 은혜를 입고 ‘나의 구원’에 안주한 히스기야보다,
더욱 장성한 그리스도인으로 쓰임 받는 삶이 되기를..
이 영역조차 우리의 고백으로 닿을 수 없을 것이기에
이 아침, 성령님을 적극적으로 삶에 초대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부제: “히스기야의 믿음, 그 이상의 영역으로”(사 36-39)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사 38:17)
관찰 및 묵상
1.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히스기야는 죽을 병을 선고받고 눈물로 기도하던 사람이다.
그 고통은 절망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통로였다는 것을 그는 고백한다.
우리도 그렇다.
지금 이 고통이 끝나야 평안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는 그 자리에서
비로소 참된 평안이 시작된다.
2.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히스기야는 자신이 육신적으로 살아난 것보다,
영혼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생명을 넘어 영혼까지도 건지시는 사랑이다.
사람은 몸이 낫는 것에 감격하지만,
믿음은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더 크게 여긴다.
3. “나의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마주하지 않으시고,
자기 등 뒤로 던지셨다.
기억하지 않으시고, 다시 묻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실 때,
과거의 실패가 아니라,
회복된 나의 오늘을 보신다.
이 은혜 앞에 우리는 다시 살아나게 된다.
적용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
사실 우리야말로 오늘날의 히스기야가 아닌가?
다만, 오늘 주로 묵상한 본문에서 다루지는 않았으나
히스기야의 다음 세대를 향한 마음은 다소 아쉽다.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하고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사 39:8)
본인은 큰 은혜를 입었으나 더 확장되지 못하고 좋소이다 로 끝이 나는 히스기야.
한계 많은 인간의 삶을 누가 부정하랴.
도리어 이게 맞다고 주장하는 세상의 메시지에 그 누구도 쉽게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의 결단이다.
그저 은혜를 입고 ‘나의 구원’에 안주한 히스기야보다,
더욱 장성한 그리스도인으로 쓰임 받는 삶이 되기를..
이 영역조차 우리의 고백으로 닿을 수 없을 것이기에
이 아침, 성령님을 적극적으로 삶에 초대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