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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6 주일오전설교

함께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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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5-11-16 19:24

본문

설교본문: 전도서 4장 1-12절

함께 오름


서론: '함께 오름'의 의미와 현실 직시

오늘 설교의 제목은 “함께 오름”입니다. 이는 승강기 건축 공사와 느헤미야 성전 기도회를 통해 우리 교회에 익숙해진 단어입니다. 승강기 공사는 어르신들의 다리가 되어주고, 2층은 모여 이야기할 공간이 되며, 3층은 다음 세대를 위한 자모실이 되는 등, 하나의 공사를 통해 모든 세대가 함께 오르는 의미 있는 공간들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처럼 누군가를 치켜세우거나 드러내는 곳이 아닌, 단 한 사람도 뒤처지는 사람 없이 모두 함께 손잡고 주의 성전으로 오르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함께 오름'이라는 아름다운 이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현실 속에서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이에 전도서는 철저하게 현실을 자각하게 해주는 책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전도서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시작하며 우리의 일상과 마음속을 그대로 비춥니다. 전도자는 이 정직한 현실 진단을 통해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고, 그곳에서 절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우리를 신앙 안으로 끌어올려 주는 책입니다. 현실 진단이 깊을수록 우리에게 답이 없음을 깨닫고 예수를 찾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처럼 현실을 직관함으로 예수님을 희망하는 '진짜 신앙'이 혼자 인생길을 오르는 자가 아니라 예수와 함께, 공동체와 함께 오르는 인생으로 다시 세워주는 은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시대의 '세 가지 없음(三無)'

전도서 4장에는 우리 인생에서 사라진 '세 가지 없음(三無)'에 대한 냉철한 현실 진단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참된 위로, 평안, 그리고 사랑할 대상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1. 참된 위로자가 없는 시대 (1-3절)

전도자는 먼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학대와 눈물에 대해 말합니다. "보라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라고 말하며, 학대받는 자에게는 위로자가 없고 학대하는 자에게는 권세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학대하는 자는 그 권세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지 않기에 학대받는 자의 눈물을 보지 못하고 권력을 휘두릅니다. 전도자는 이 고통 속에서 차라리 죽은 자들이나 출생하지 않은 것이 더 복되다고까지 말합니다. 인류 역사에서 사람을 괴롭히는 학대는 끊이지 않으며, 고통당하고 억울한 자들을 일으켜 세워 줄 위로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SNS가 활발하여 소통이 잘 되는 듯하지만, 사실 우리는 단절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진심이 사라지고 진정한 위로가 사라진 시대입니다. 전도서의 저자인 솔로몬 왕은 진정한 위로는 그 어떤 제도나 법, 도덕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 인생에 참된 위로가 있을 수 없다고 현실을 직시하게 합니다. 결국 전도자는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로 끌어당깁니다. 고린도후서 1장처럼, 우리 주님만이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환난 중에서 위로하시는 참 위로자 되십니다. 우리는 스스로 위로할 수 없지만, 주님의 위로하심을 전하는 자로 살아갈 때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위로가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2. 참 평안이 없는 시대 (4-6절)

많은 사람이 남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를 동원하지만, 전도자는 이 모든 것이 질투와 시기심 때문이며 '헛된 바람 잡는 일'이라고 간파합니다. 무한 경쟁의 끝에 자기 신화와 성공이 있을지 모르나 평안이 없습니다. 반대로 5절은 '우매자처럼 팔짱을 끼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역시 자기 살을 파먹는 어리석은 일이라 경계합니다. 무한 경쟁에서 도피하여 하는 일 없이 살아도 허무하여 평안을 찾을 수 없습니다. 경쟁이 일상이 되고, 쉼이 죄책감이 되며, 비교가 습관이 된 세상에서 우리는 일을 해도 불안하고 쉬어도 불안합니다. 전도자는 6절에서,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낫다"고 충고합니다. 두 손 가득 모든 것을 움켜쥐려 하면 하나님이 내미시는 손을 잡을 빈손이 없습니다. 한 손이라도 비워 주님 손을 잡고 동행하는 것이, 적게 가져도 하나님 주시는 평온함으로 마음이 채워지는 길입니다. 탐욕과 게으름을 경계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사랑과 헌신할 대상이 사라진 시대 (7-8절)

전도자는 아들도 형제도 없이 홀로 살아가지만 수고가 끝이 없는 한 사람을 예로 듭니다. 여기서 아들은 사랑할 대상을, 형제는 함께 길을 걸어갈 동료를 말합니다. 이 사람은 공동체 없이 혼자 일에 빠져 재물을 모았으나 물려줄 상속자도 없습니다. 상속자가 없다는 것은 자녀가 없다는 문제가 아니라, 사랑할 대상을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일로 바쁘지만 외로움은 커지고, 관계는 사라졌으며, 마음을 표현하고 받아줄 사랑의 대상 없이 고독하게 살아가는 오늘날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심지어 이 사람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않는 병'에 걸려, 가지면 가질수록 만족할 줄 모릅니다. 바로 그때 이 사람은 "내가 누구를 위하여 살고, 누구를 위해 수고하는가?"라고 질문합니다. 사랑할 대상을 잃어버리고 하는 수고는 결국 헛된 수고가 되고 맙니다. 바쁨은 많아도 평안은 없고, 성과는 높아져도 목적은 흐려진 이 시대에, 우리는 끝까지 사랑하고 헌신할 대상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결론: 함께 오름의 길과 세 겹 줄의 진리

전도자는 이 세 가지 '없음'의 현실 진단 후에 세 겹 줄 이야기를 통해 희망의 길로 초대합니다. 하나의 줄은 쉽게 끊어지지만, 여러 가닥이 모이면 결코 끊어지지 않듯, 한 사람으로는 추위를 이길 수 없지만 두 사람이면 서로 온기가 되어 이길 수 있습니다(9-11절). 이는 곧 교회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나와 동행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 외롭지 않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늘 동행하여 주시니 결코 허무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전도서가 '세 겹 줄'을 말하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한 줄은 '나', 다른 한 줄은 '너'를 말한다면, 마지막 한 줄은 무엇일까요? 이는 단순히 협동심을 말하는 윤리적 결론이 아닙니다. 저는 마지막 한 줄을 예수 그리스도의 붉은 줄로 해석해 보았습니다. 여리고 정탐꾼이 기생 라합에게 약속했던 구원의 표식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을 상징하는 그 붉은 줄 말입니다. 나와 다른 이들이 손잡은 그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붉은 줄이 놓일 때, 비로소 완벽하게 결속되어 끊어지지 않는 세 겹 줄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이 무정한 현실을 살아가며 기억해야 할 단 하나의 진리는 이것입니다. 인생은 혼자 오르는 산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오르는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전도자는 정직한 현실 진단을 통해 우리를 나 홀로 오름이 아닌, 예수와 함께 오르는 '다른 길'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 예수와 함께 오르면 참 위로가 있습니다.

  • 예수와 함께 오르면 참 평안이 있습니다.

  • 예수와 함께 오르면 사랑할 이유와 헌신할 대상이 다시 정확해집니다.

우리는 아무리 높은 산을 올라가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줄은 끊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가야 할 길은 "예수와 함께 오르는 교회," "예수의 붉은 줄로 묶인 함께 오름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든 모든 공간은 주님과 함께 머무르는 믿음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선명한 붉은 줄 한 가닥이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주님과 함께 오르는 은혜의 인생길 다 되시길 소망합니다.



[기도문]

참 위로자 없고, 참 평안이 없고, 사랑해야할 대상을 잃어버린 냉혹한 시절을 살아가지만, 주님 우리와 함께 함으로, 그 붉은 줄이 우리의 위로와 평안과 사랑되어 한 주간 주님과 끊어지지 않는, 남도교회 공동체와 더 단단히 결속되는 세 겹 줄로 매여 살아가는 은혜의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